"인생마라톤, 은퇴후가 진짜지유"

 동아 마라톤

- 동아마라톤 홍보대사 '국민마라토너' 이봉주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40)가 다시 달린다. 이번엔 엘리트 선수로서가 아니라 마라톤 붐을 일으키기 위해 봉사 차원에서 뛴다.

 

지난해 10월 제90회 전국체전 우승을 끝으로 20년 마라톤 선수생활을 접은 이봉주는 올해로 81회를 맞는 동아마라톤대회의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그동안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기 위해서 한국 풀뿌리 마라톤의 원조 동아마라톤과 함께 마라톤 인기 회복을 위해 뛰겠다는 뜻이다. 선수생활은 마감했지만 마라톤 전도사로 붐 조성에 한 몫 하겠다는 각오다. 이봉주는 3월21일 열리는 2010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81회 동아마라톤대회에 마스터스마라토너들과 일정 거리를 함께 달리며 교감을 가질 계획이다.

 

“한국 마라톤은 동아마라톤의 역사와 같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동아마라톤을 통해 성장했고 우리 후배들도 동아마라톤을 통해 국제무대로 도약할 겁니다. 마스터스마라토너들도 동아마라톤은 꼭 뛰어야할 대회로 생각합니다. 동아마라톤이 더 발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봉주는 국민들에게 ‘희망전도사’로 통한다. 1990년 마라톤에 데뷔해 20년 동안 전 세계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41회의 풀코스를 완주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고, 2001년 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했다.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서 2연패하는 등 11개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넘어질 듯 하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같은 그의 모습을 통해 국민들은 삶의 의지를 새롭게 했다.

 

특히 2007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는 극적인 역전 우승으로 전 국민들을 열광시켰다. 일부에서 ‘은퇴할 나이가 지났다’는 평가를 받던 이봉주는 당시 케냐의 키프로프 키루이에게 30여 m를 뒤지다 레이스 막판 극적인 역전극을 펼치며 정상에 올랐다. 당시 골인 지점인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주변에서는 팬들이 “이봉주”를 연호했고 TV를 시청하던 국민들도 극적인 역전극에 환호성을 질렀다. 이봉주가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7분20초의 한국 기록은 아직도 난공불락이다.

 

“국민들의 성원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봉주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 팬들에게 돌려줘야죠. 국민 여러분 우리 함께 달리죠. 달리면 건강해지고 나라도 발전합니다.”

 

전 소속팀 삼성전자에서 코치직을 제의를 거절하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는 이봉주는 한국 마라톤의 산 증인이다. 그리고 동아마라톤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이봉주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챔피언 고 손기정 선생과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에게 가려 있었지만 국민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한 측면에서 한국 최고의 마라토너다. ‘국민마라토너’란 닉네임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비록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은메달에 그쳐 ‘올림픽 금메달의 한’을 풀지는 못했지만 세계 그 어느 마라토너보다 더 큰 기쁨을 국민에게 근 20년간 전해줬다.

 

이봉주는 왼발이 253.9mm, 오른발이 249.5mm로 차이가 나고 다리 길이가 차이가 나는 등 신체적 약점이 있었다. 황영조가 가지고 있던 스피드도 없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지구력으로 버텨왔다. 특히 “이젠 끝났다”는 평가 속에서도 번번이 오뚝이처럼 우뚝 일어서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봉주는 43번 풀코스에 도전해 41번 완주했다. 세계 마라톤 사에 전례가 없었던 기록이다. 올림픽에만 4회 연속 출전한 것도 기네스북에 남을 일이다. 1960로마올림픽과 1964도쿄올림픽의 마라톤을 연거푸 제패한 에티오피아 ‘맨발의 영웅’ 비킬라 아베베도 15번 도전해 13회를 완주했을 뿐이다.

 

보통 풀코스를 한번 완주하기 위해 주당 330km로 12주 훈련(총 3960km)을 하니 43번 도전했으니 총 훈련거리가 17만0280km나 된다. 여기에 풀코스, 하프코스 1만m, 5000m 등을 감안하면 20만 km 정도를 달린 셈이 된다. 세계무대에선 ‘철의 레이서’로 불린다.

 

이봉주의 이런 역주의 뒤에는 동아마라톤이 있었다. 1990년 전국체전에서 마라톤에 입문해 그 이듬해부터 동아마라톤에 출전해 지금까지 총 9회를 뛰었다. 1991년엔 2시간 16분 56초로 15등을 했지만 1995년엔 2시간 10분 58초로 1위를 차지했다. 1996년엔 개인 처음 2시간 8분대(2시간 8분 26초)를 뛰었고 그해 애틀랜타올림픽에서 2위를 했다. 혹독한 지옥훈련이 은메달 획득의 발판이었지만 세계적인 건각들이 참가하는 동아마라톤을 통해 기량을 점검해 레이스 감각을 키운 것도 큰 힘이 됐다.

 

이봉주는 1997년 2시간14분25초로 13위를 한 뒤 국제마라톤 출전에 집중하느라 한동안 국내 대회를 뛰지 않았다. 그는 국제무대에서도 빛났다. 2000도쿄마라톤 2위(2시간7분20초·한국기록), 2001년 제105회 보스턴마라톤 우승, 2002부산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2004년 서울국제마라톤으로 변신한 제75회 동아마라톤에 다시 모습을 보였다. 당시 2시간8분15초의 좋은 기록으로 5위를 했다.

 

2004아테네올림픽(14위)과 2005베를린마라톤(11위)에서 부진하며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봉주는 2007서울국제마라톤 겸 제78회 동아마라톤에서 기적적인 역전극을 펼치며 경제 난 속에 시름하던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당시 케냐의 폴 키프로프 키루이에게 30m 이상 떨어져 있다가 막판 스퍼트로 2시간8분4초로 역전 우승한 것이다. 37세의 노장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뒤집기 하는 모습에 국민 전체가 열광했다. 무엇보다 이봉주는 승자라고 우쭐하지 않고 패자라고 실망하지 않고 훈련에 매진하는 ‘늘 푸른 소나무’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봉주는 2008서울국제마라톤에서 8위(2시간12분27초),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28위(2시간17분56초)로 주춤하며 하락세를 걸었다. 급기야 2009서울국제마라톤에서는 2시간16분46초를 기록해 전체 14위이자 국내 선수 8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그리고 은퇴의 길을 걸었다.

 

‘인간 기관차’ 에밀 자토페크(체코)는 1948년 런던올림픽 1만m 금메달에 이어 1952년 헬싱키올림픽 장거리 3관광(500m, 1만m, 마라톤)에 올라 ‘신발을 신은 전갈’이란 별명을 얻다. 세계기록도 18개나 세우기도 했다. 그는 말했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라고.

 

“저도 달리는 것밖에 몰러유~. 앞으로도 달릴 것이에유~.”

 

이봉주는 마라톤 전도사로, 후배를 양성하는 지도자로 계속 달린다. ‘이봉주의 레이스’는 아직 진행형이다.

 

양종구 동아일보 기자


동마지기

Just another 저널로그 Sites site



댓글 달기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이용약관 회사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