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마라톤 참가기 5

 해외 마라톤

필자는 이 길을 달렸을 서윤복, 함기용, 이봉주 선수를 떠올리며 경쾌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초반 5㎞ 구간은 내리막이므로 오버페이스하지 않아야 후반 레이스가 편해진다는 조언을 숱하게 들은 터라 조깅하듯 여유 있게 달렸다. 기록에는 연연하지 않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어차피 난코스로 이름난 곳이니 힘들여 달려도 기자의 최고기록엔 못 미칠 것 아닌가. 마스터스 달림이가 최고기록 운운하면 마라톤 문외한들은 의아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3시간대, 4시간대 기록인 마스터스가 조금 빠르면 어떻고 느리면 어떠랴.

그러나 당사자들은 그렇지 않다. 입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마스터스라 해도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면 묘한 성취감을 느낀다. 4시간 안에 완주하는 데 성공한 ‘서브 4’ 주자는 목표기록을 조금 높여 3시간30분 안에 달리겠다고 다짐하게 마련이다.

 

2007년 11월4일 열린 중앙마라톤 대회에서 3시간19분50초로 개인 최고기록을 세운 기자는 3시간20분 벽을 깼다는 데에 보람을 느낀 바 있다. 지난 3월16일 개최된 동아마라톤에서 번호표(흔히 ‘배번’이라 불림)를 받고 작은 기쁨을 맛보았다. ‘A4297’이란 번호표를 가슴에 떡 붙이니 신바람이 났다. 3시간20분 이내의 기록자에겐 A로 시작하는 번호표가 주어지며 앞자리인 A그룹 지역에서 출발한다.

 

마라톤에 입문할 때 개인기록 면에서는 동아마라톤 A그룹 출발, 보스턴 마라톤 기준기록 달성을 목표로 세운 바 있다. 그러니 기자는 그 목표를 이미 이룬 셈이다. 이번 대회를 한국의 달림이들에게 충실히 보고하기 위해 조그만 취재수첩과 볼펜을 허리에 차는 작은 지갑에 넣었다. 달리면서 수시로 수첩을 꺼내 기록할 심산이었다. 펀런(Fun Run)을 결심했다. 달림이 은어로는 ‘즐달(즐겁게 달리기)’이다.

 

도로 주변에 나와 응원하는 주민들 중엔 유난히 어린이가 많았다. 이들은 달림이에게 줄 먹을거리를 들고 나왔다. 가장 흔한 것은 오렌지였다. 먹기 좋게 잘라 손에 들고 러너에게 내민다. 초반 5㎞ 정도까지는 목이 마르지 않고 배도 고프지 않아 어린이들의 호의는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받아 먹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6㎞ 지점을 지나니 왼쪽에 애쉬랜드라는 마을이 나타난다. 목조 2~3층 단독주택이 길가에 늘어선 마을이다. 잔디가 깔린 작은 정원과 주차장이 있는 집이 대부분이다. 정원에는 개나리와 철쭉이 활짝 피었다. 한국보다 위도상 북쪽에 위치하므로 봄이 한국보다 한 달가량 늦게 온다. 창가에는 화분을 놓아 우아한 분위기로 집을 가꾼 곳이 많다. 이 마을에서도 주민들이 열렬한 응원을 펼친다. 멋진 시계탑 건물이 돋보인다. 간이의자에 앉아 팔을 휘저으며 응원하는 노인들도 눈에 띈다.

 

10㎞ 지점을 통과하자 프래밍험이라는 작은 도시로 접어든다. 왼편에 프래밍험 역이 보인다. 역사(驛舍) 겉에 붙은 더께로 보아 철도 초기에 지은 건물인 듯하다. 그 옆에는 BOA(Bank of America) 지점 건물이 보인다. 깨끗한 양복 차림의 부부가 모자를 벗어 흔들며 응원한다. 도로는 여전히 평탄하다. 간간이 오르막이 나타나지만 대체로 평탄하거나 내리막이다. 연도에 늘어선 주민들의 함성은 끊이지 않는다.

 

100m 17초69 속도로 풀코스 완주

 

15㎞ 지점 왼편에 내틱이라는 마을이 나타난다. 현대자동차를 판매하는 딜러숍이 보여 반갑다. 현대차, 기아차가 미국에서 잘 팔리기를 기원한다. 앨라배마 주의 몽고메리 시에 세워진 현대자동차 공장이 잘 가동되는지 궁금해진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의 얼굴도 떠오른다. 몽고메리 시를 공장부지로 낙점할 때 ‘몽고메리’가 ‘몽구’와 비슷한 발음이어서 골랐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정몽구 회장을 인터뷰해서 직접 질문하고 싶다.

 

필자는 ‘5분 페이스’로 달렸다. 1㎞ 거리를 5분에 달리는 속도를 일컫는다. 이 속도를 풀코스 내내 유지하면 3시간30분58초에 결승점을 밟는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은 마라톤 레이스에서 중요하다. 엘리트나 마스터스나 마찬가지다. 속도가 들쭉날쭉하면 전체 기록이 나빠진다. 엘리트 선수들은 엇비슷한 기록 보유자끼리 무리를 지어 달리며 페이스를 가늠한다. 이들은 평소에 트랙이나 도로 연습을 통해 페이스 감각을 익힌다. 400m 트랙에서 연습할 때 이들은 한 바퀴에 70초 페이스 과제가 주어지면 1~2초 오차로 꾸준히 달린다. 고수 반열에 오른 마스터스도 한 바퀴 80초 목표로 트랙을 돌면 수십 바퀴를 돌더라도 매 바퀴 기록을 거의 79초, 80초, 81초에 맞춘다. 속도감각이 몸에 밴 것이다.

 

속도와 완주기록 시간을 일목요연하게 표시한 ‘페이스 차트(pace chart)’라는 표가 있다. 1 ㎞를 3분5초로 달리면 2시간10분에 결승점을 통과한다. 3분12초면 2시간15분이다. ‘서브 3’ 기록을 위해서는 4분16초를 유지해야 한다. 1㎞에 4분16초(256초)이니 100m에 25.6초인 셈이다. 그 먼 거리를 이 속도로 달리는 게 예삿일이 아니다.

 

(계속)

동마지기

Just another 저널로그 Sites site



댓글 달기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이용약관 회사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