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마라톤 참가기 4
해외 마라톤2007년 보스턴 대회 때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몹시 추워서 참가자들이 혼났다고 한다. 올해는 쾌적한 날씨다. 출발 무렵 기온은 9℃, 하늘은 쾌청하다. 뒤편에 선 참가자들은 앞서 출발하는 엘리트 선수를 볼 수가 없다. 이럴 줄 알고 필자는 출발구역에 들어서기 전에 엘리트 선수 출발점에 가서 그들이 몸을 푸는 모습을 눈여겨봤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수두룩했다. 케냐, 에티오피아 선수들은 자코메티가 만든 인체 조형물처럼 몸매가 깡마르고 길쭉하다. 아쉬운 것은 엘리트 선수 출발구역에 한국 선수가 한 명도 없다는 점.
드디어 필자가 속한 그룹도 스타트! 필자는 이날 ‘마라톤 정장’을 차려입었다. 상의는 소매 없는 싱글렛, 하의는 짧은 팬츠. 상의는 동아일보사 마라톤 동호회 ‘동동주(東同走)’의 로고가 새겨진 것을 입었다. 요즘 마라톤 경기복은 ‘스포츠 과학화’에 힘입어 땀을 빨리 증발시키는 쿨맥스 등 고기능성 섬유로 만들어진다. 신발도 첨단기술을 동원해 제작한 고급 제품이 수두룩하다. 엘리트 선수는 무게가 170~200g에 불과한 신발을 신는다. 이런 신발을 손으로 들면 무게를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가볍다.
마스터스 참가자 중에서도 체중이 덜 나가고 기록이 ‘서브3’인 고수들은 이런 운동화를 고른다. 엘리트 선수는 신발에 따라 기록이 30초 안팎씩 차이가 난다고 하니 1~2초를 다투는 그들에게 신발 선택은 중요한 요소다. 그러니 아디다스, 나이키, 아식스 등 신발 메이커들은 자사 제품을 신은 선수가 우승하도록 선수 개개인의 발에 맞는 신발을 개발하느라 열을 올린다. 선수들은 스포츠 용품업체로부터 후원을 받으며 제품 홍보 역할을 맡는다.
마스터스들도 마라톤에 심취하다 보면 상하의, 신발, 양말, 모자, 마라톤 시계, 선글래스 등을 브랜드 제품으로 갖추려 애쓴다. 수십만원을 들여 고급 제품을 사 쓰면 편하게 달릴 수 있고 기록도 향상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 달림이들은 마라톤에 입문한 후 마라톤 용품 구입비 때문에 부인과 다투는 경우가 많다. 고기능성 신발은 10만~13만원에 이른다.
신발 수명이 800㎞ 정도이므로 열심히 연습하는 러너는 두세 달 만에 갈아치운다. 겉보기엔 멀쩡하므로 부인이 “신발 산 지 얼마 됐다고 또 사느냐”고 따진다. 신발장에는 운동화가 그득해진다. 어느 브랜드에서 신제품이 나왔다고 하면 또 귀가 솔깃해진다. 아스팔트의 충격을 잘 흡수하는 신발이라느니, 반발력이 극대화된 고무를 사용했다느니 하는 광고를 보면 부인의 지청구를 감수하고라도 신제품을 사야 직성이 풀리는 이도 적잖다.
마라톤 용품 전문매장에 가면 신발을 고를 때도 시간이 꽤 걸린다. 여느 운동화나 구두를 살 때처럼 발 크기에 맞는 신발을 골라 신고 2~3m 걸어본 뒤 구매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발의 아치가 높은지, 낮은지 측정하고 발두께와 걷는 습관, 달리는 자세 등을 고려해서 고른다. 이를 측정하는 장비가 마련돼 있다. 판매 직원은 족부의학을 공부하고 발 관리사 자격증을 딴 사람들이다.
2004년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마라톤 연습을 시작한 필자는 마니아급은 아니어서 신발에 그리 집착하지는 않는다. 신어서 편하고 적당한 쿠션을 가진 제품을 고른다. 신발장에 수북이 쌓일 만큼 많지도 않다. 보스턴에 갈 때는 약간 낡았지만 익숙한 운동화 두 켤레를 갖고 갔다. 그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을 골라 신었다.
초반 10㎞는 Fun Run!
심호흡을 하고 스타트 라인을 향해 천천히 달려나갔다. 브라스밴드가 장쾌한 음악을 연주한다. 이런 음악을 들으면 감정이 고조되면서 힘이 솟는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 페인트로 ‘보스턴 마라톤 스타트’라는 큼직한 글씨가 쓰여 있다.
출발지인 홉킨턴은 미국 동부의 전형적인 전원 마을이다. 마을 한가운데로 2차선 아스팔트 자동차 도로가 있고 좌우 양쪽에 주택, 상가, 관공서, 교회 등이 서 있다. 동네 주민들이 거의 모두 나온 듯하다. 저마다 환호하며 응원한다. 바로 옆에 주민들이 서 있기에 그들의 표정이 또렷이 보이고 목소리도 잘 들린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 광장처럼 넓은 도로에서 출발하는 동아마라톤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다. 한국으로 치면 면(面) 단위 마을에 2만 5000여 마라톤 참가자가 몰려와 좁은 길에 길게 늘어서 있다가 순차적으로 출발하는 격.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