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쉬다 울다… 다시 달린 7시간22분, 내 골인점은 ‘희망’이었습니다”
해외 마라톤
rundonga(2009-11-20 10:33:03) | 원문보기
“지선 씨, 힘들면 10KM만 갔다가 지하철 타고 와요.”
뉴욕시민마라톤을 앞두고 푸르메재단 백경학 이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걸어서라도 완주하겠다고 결심했던 터였다. 하지만 전날 마라톤 고수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마라톤 코스를 차로 돌아보면서 결연했던 의지는 어느새 걱정으로 바뀌었다. ‘도저히 안 되겠으면 지하철을 타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손은 주머니 안의 지하철 카드를 만지고 있었다.
새벽부터 세계 각국의 마라톤 마니아 4만 명이 모였다. 엄청난 인파에 놀랐지만 무엇보다 인간 한계를 시험한다는 마라톤을 축제처럼 즐기는 모습은 그간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던 내게는 별천지였다. 그룹별로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분위기는 점점 고조됐다. 나 역시 자꾸만 운동화 끈을 고쳐 매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뉴욕시민마라톤은 스태튼 섬의 끝자락에서 출발해 베라차노 내로스라는 브루클린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우리 일행은 나와 함께 푸르메재단의 재활병원 설립 기금 모금 캠페인을 위해 이번 대회에 참가한 장애인 마라토너 4명과 도우미 2명. 다리에 반도 못 미쳐 나는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호흡은 가빠졌다.
일행을 먼저 보내고 겨우 다리를 건너 도착한 브루클린 길가는 응원하는 시민과 밴드의 연주로 한바탕 축제 분위기였다. 흑인과 멕시칸 등 다양한 인종이 펼치는 각양각색의 응원을 받으면서 뉴욕이라는 곳이 정말 여러 색깔을 갖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레이스 초반에는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면서 15km를 왔다. 21km 지점을 통과한 뒤 ‘퀸즈버러 다리를 넘으면 맨해튼까지는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몸은 지칠 대로 지쳤다. 발목에서 시작된 통증은 무릎 위까지 올라왔다. 가까스로 맨해튼에 들어오니 다리를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힘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속도는 더욱 느려졌다.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무모한 도전을 끝낼 시간이었다. 그만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주위에서 나를 보며 ‘Go Korea(한국 파이팅)!’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지나가던 마라토너들이 힘내라며 바나나를 건넸다. 신기하게도 힘이 났다.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보자고 나를 다독였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어느새 브롱크스를 앞두고 있었다.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계속 걸었다. 반환점 부근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렸던 ‘Almost there(거의 다 왔어요, 힘내요)!’라는 말은 의사 선생님이 아파하는 나에게 “이제 거의 다 끝났어”라고 하는 얘기 같았다. 희망을 갖고 한 발짝씩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센트럴파크가 보였다. 이제 7km만 더 가면 결승점이었다.
센트럴파크 입구에서 ‘이지선 파이팅! 푸르메재단 파이팅!’이라고 쓴 피켓이 보였다. 오랜 시간 나를 응원하며 기다려준 사람들. 그들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젖 먹던 힘까지 내서 결승점으로 향했다. 어느덧 해는 지고 어둑어둑해졌다. 10km도 걸어본 적 없던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리의 끝에 도착하니 눈물이 솟구쳤다. 백경학 이사님이 주신 태극기를 흔들며 골인했다. 7시간22분 동안 벌인 나 자신과의 싸움. 불가능해 보였지만 해냈다. 포기하고픈 순간을 넘어서니 기적은 일어났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에 새삼 공감하게 됐다. 수많은 고비가 오지만 참고 견디면 꿈은 이루어진다. 푸르메재단이 경기 화성시에 건립하는 민간재활병원 건축비로 약 350억 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2000명의 후원으로 모아진 돈은 27억 원. 민간재활병원 건립은 내가 마라톤 완주에 도전했던 것처럼 허무맹랑한 꿈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내가 걷고 달려온 길처럼, 사람들의 응원과 사랑이 있다면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늘 나의 완주가 푸르메재단의 꿈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또 세상에 지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이 되길 바란다.
<뉴욕에서 이지선>
뉴욕시민마라톤을 앞두고 푸르메재단 백경학 이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걸어서라도 완주하겠다고 결심했던 터였다. 하지만 전날 마라톤 고수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마라톤 코스를 차로 돌아보면서 결연했던 의지는 어느새 걱정으로 바뀌었다. ‘도저히 안 되겠으면 지하철을 타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손은 주머니 안의 지하철 카드를 만지고 있었다.
새벽부터 세계 각국의 마라톤 마니아 4만 명이 모였다. 엄청난 인파에 놀랐지만 무엇보다 인간 한계를 시험한다는 마라톤을 축제처럼 즐기는 모습은 그간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던 내게는 별천지였다. 그룹별로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분위기는 점점 고조됐다. 나 역시 자꾸만 운동화 끈을 고쳐 매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뉴욕시민마라톤은 스태튼 섬의 끝자락에서 출발해 베라차노 내로스라는 브루클린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우리 일행은 나와 함께 푸르메재단의 재활병원 설립 기금 모금 캠페인을 위해 이번 대회에 참가한 장애인 마라토너 4명과 도우미 2명. 다리에 반도 못 미쳐 나는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호흡은 가빠졌다.
일행을 먼저 보내고 겨우 다리를 건너 도착한 브루클린 길가는 응원하는 시민과 밴드의 연주로 한바탕 축제 분위기였다. 흑인과 멕시칸 등 다양한 인종이 펼치는 각양각색의 응원을 받으면서 뉴욕이라는 곳이 정말 여러 색깔을 갖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레이스 초반에는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면서 15km를 왔다. 21km 지점을 통과한 뒤 ‘퀸즈버러 다리를 넘으면 맨해튼까지는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몸은 지칠 대로 지쳤다. 발목에서 시작된 통증은 무릎 위까지 올라왔다. 가까스로 맨해튼에 들어오니 다리를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힘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속도는 더욱 느려졌다.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무모한 도전을 끝낼 시간이었다. 그만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주위에서 나를 보며 ‘Go Korea(한국 파이팅)!’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지나가던 마라토너들이 힘내라며 바나나를 건넸다. 신기하게도 힘이 났다.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보자고 나를 다독였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어느새 브롱크스를 앞두고 있었다.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계속 걸었다. 반환점 부근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렸던 ‘Almost there(거의 다 왔어요, 힘내요)!’라는 말은 의사 선생님이 아파하는 나에게 “이제 거의 다 끝났어”라고 하는 얘기 같았다. 희망을 갖고 한 발짝씩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센트럴파크가 보였다. 이제 7km만 더 가면 결승점이었다.
센트럴파크 입구에서 ‘이지선 파이팅! 푸르메재단 파이팅!’이라고 쓴 피켓이 보였다. 오랜 시간 나를 응원하며 기다려준 사람들. 그들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젖 먹던 힘까지 내서 결승점으로 향했다. 어느덧 해는 지고 어둑어둑해졌다. 10km도 걸어본 적 없던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리의 끝에 도착하니 눈물이 솟구쳤다. 백경학 이사님이 주신 태극기를 흔들며 골인했다. 7시간22분 동안 벌인 나 자신과의 싸움. 불가능해 보였지만 해냈다. 포기하고픈 순간을 넘어서니 기적은 일어났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에 새삼 공감하게 됐다. 수많은 고비가 오지만 참고 견디면 꿈은 이루어진다. 푸르메재단이 경기 화성시에 건립하는 민간재활병원 건축비로 약 350억 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2000명의 후원으로 모아진 돈은 27억 원. 민간재활병원 건립은 내가 마라톤 완주에 도전했던 것처럼 허무맹랑한 꿈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내가 걷고 달려온 길처럼, 사람들의 응원과 사랑이 있다면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늘 나의 완주가 푸르메재단의 꿈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또 세상에 지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이 되길 바란다.
<뉴욕에서 이지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