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회만에 ‘명품대회’ 공인… 뉴욕 런던 베를린과 어깨 나란히

 동아 마라톤
일제강점기엔 ‘민족혼 해방구’… 나라잃은 마라톤으로 달래
손기정-이봉주-황영조 등 배출
마스터스 신설… 대중화 이끌어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인증하는 최고 단계인 골드 대회로 승격된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동아마라톤대회는 일제강점기부터 국민과 희로애락을 같이 했다. 1931년 첫발을 뗀 동아마라톤은 올해까지 80회 대회를 여는 동안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고 울분을 달래준 전령이었다.

○ 일제강점기의 해방구

동아마라톤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고 손기정 선생을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시킨 요람이었다. 당시 마라톤은 조선인의 울분을 달래고 희망을 전해준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손 선생은 1932년 2회 대회에 처음 출전해 2위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고 3회 대회에서 우승해 국내 1인자로 우뚝 섰다. 3년 뒤 베를린 올림픽에서 2시간29분19초의 올림픽 최고 기록으로 올리브 관을 썼다. 동아일보는 8월 25일자 손 선생의 우승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워 조선인들에게 민족의 자긍심을 심었다.

○ 한국 마라톤의 젖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봉주(삼성전자), 현역 최강 지영준(경찰대) 등 한국 마라톤의 간판은 모두 동아마라톤 출신이다.

동아마라톤은 신기록의 산실로도 명성을 떨쳤다. 남자 마라톤에서 수립된 한국 기록 28회 가운데 10번이 동아마라톤에서 나왔다. 김완기(당시 코오롱)는 1990년과 1994년 대회에서 한국 기록을 세우며 ‘신기록의 사나이’로 명성을 떨쳤다.

○ 마라톤 붐 조성

동아마라톤은 1994년 국내 최초로 일반 국민이 참가하는 마스터스 부문을 신설해 마라톤 붐을 일으켰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국민은 달리는 즐거움 속에서 희망을 찾았다.

마스터스 부문은 첫해인 1994년 174명이 출전한 뒤 1998년 6931명, 1999년엔 국내 단일 종목 사상 최초로 1만 명(1만1303명)을 넘었다. 마라톤의 대중화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최근에는 2만여 명의 마스터스가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국내 마라톤 인구가 400만 명에 이른 데는 동아마라톤의 역할이 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 국내를 넘어 세계 명품 대회로

동아마라톤은 2000년 경북 경주시에서 서울로 대회 장소를 옮겼다. 2004년에는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으로 명칭을 바꿨다. 세계적인 마라톤의 첫째 조건은 ‘수도의 도심을 달린다’는 것이다. 동아마라톤이 서울로 대회 장소를 옮겨온 이유다.

세계적인 마라톤으로 인정받기 위해 좋은 기록은 필수 조건이다. 서울국제마라톤 사무국은 2000년 이후 서울 코스를 7차례나 변경했다. 모든 참가자가 편안하게 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케냐와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세계적인 건각들도 초청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04년 남아공의 거트 타이스는 2시간7분6초의 국내 대회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그해 세계 랭킹 6위에 해당한다. 서울국제마라톤이 세계적인 대회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증거였다. 국내 개최 대회 역대 남자부 톱7이 모두 서울국제마라톤에서 나왔다.

서울국제마라톤은 마스터스 참가자 수에서도 국내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자선기금 모금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한다.




“축하합니다” 마라톤 관계자들 축하메세지

 

"명품 마라톤" 도약 여러분이 해냈습니다

동마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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